비슬산 종주산행
앞산-비슬산-앞산 40km
산에 간다는 건
그 자체로 분명히 매력적인 행위지만
주간이 아닌 야밤에 산행한다는 것 !
제법 오랫동안 산길을 걸었지만 머리에 불 밝히고
좁은 시야에 갇혀 산길을 걷는다는걸 그렇게 즐기질 않는다.
가끔 종주산행이나 되면 어쩔수 없이 머리에 불 밝히고 걷게되지만...,
8월초 지리산 종주에 이어
8월 마지막날 첫새벽에 대구의 남쪽 비슬산까지 걸어 간 후
다시 그 길 돌아 대구로 돌아오는 여정으로
40km를 걷는 길이다.
2019. 8. 31.
한여름더위는 제법 한풀 꺾였다지만 대구의 아스팔트는 열기를 뿜어내고 공기는 후텁지근 한날.
앞산공원 안지랑이골-비파산-앞산-성불봉-월배봉-청룡산-닭지만당산-정대봉-비슬산, 20km 왕복
앞산-비슬산 6시간22분소요
비슬산-앞산 7시간03분소요
다양산악회 20명과 함께 안지랑이골을 오른다.
안일사 염불소리 경내로 퍼질때 비파산 전망대와 앞산을 지나
밤하늘을 지붕삼아 랜턴불빛에 의지한 채
도시의 불빛을 벗어나 무심한 야간에 산속으로 몰입한다.
세상을 보이는 것만 믿고 살아갈 수 있을까마는
이 순간만큼은 불빛에 비춰진 것만 믿으며 걷는다.
불빛 속에 그려진 세상만이 안전하게 인도해 줄 것이고
그 불빛에 따라 걸음은 늘어날 것이다.
어둠과 정적만이 깔린 산속에서 발걸음과 숨소리만이 어둠을 깨지만
그것마저도 미세한 소리일 뿐.
간간이 바라보이는 야경의 실체는 이 시간 넘어서도 그대로이지만
움직이는 불빛은 점차 사라지고 고정된 불빛만이 훤히 비춰진다.
렌턴빛 밖의 세상은 이 순간만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보이는 것만 바라보고 걷기에만 집중하던 순간
일출시간이 다가온다.
개활지에서 일출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길이어도
숲에 막힌 곳만 아니어도 다행이라 생각했었는데
걸음을 옮기던 순간 나뭇잎사이로 태양은 퉁~하고 솟아오르고
다시 여름의 따가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앞산에서 비슬산까지의 길 중, 힘든 구간을 지난다.
17km를 걷고 난 후 정대봉 옆을 우회하여 비슬산까지 오르는 3km의 오름길.
천천히 걷는다.
유가사에서 비슬산으로 바로 올라온 후 앞산까지 23km를 걷는 B팀과 만나야 하니 바쁠게 없다.
.비슬산까지 한걸음에 올라서니 바람 시원한 가을 날씨 같은 분위기에
시간은 여느때라면 산행지 입구에도 도착하지 못했을 시간이다.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팔공산까지 보이고
기타 무수한 봉우리며 산이며 ... 다 보인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갓 피어나기 시작하는 억새위로 여름 햇살이 쏟아진다.
시간조차 여유가 있다 보니 마음마저 포근하다.
비슬산에서 앞산까지의 길은 용문사 갈림길가지는 편안하다.
용문사 갈림길부터 2번의 깔딱고개를 넘으면 앞산을 지나고 있을테니
느긋하게 걷기로 한다.
수박고개에서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걸음이 힘든데
도중에 숲속에서 검은 동물이 제멋대로 다닌다.
검은 염소 8마리 정도가 사람도 무서워하질 않고 제세상을 만끽하고 있다.
청룡산 정상에 닿을 즈음엔 발걸음은 점차 무뎌진다.
긴긴 걸음이라고는 하지만
청룡산 정상에 서면 먼길 다왔다는 느낌이 든다.
정상에서 돌아보면 비슬산은 벌써 저만치 아득하니
저 먼길은 갔다돌아오는 이 걸 왜 이러는가 싶기도 하고,
이젠 9km정도만 걸으면 된다.
달비고개를 넘어 앞산 주능선을 오르고
앞산 정상 갈림길 옆을 돌면
대구 시가지가 다시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야간 산행과 아침의 신선한 숲길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앞산에서 비슬산으로, 다시 앞산으로 이어진 산길을 멈추고 나니
40km의 거리에 13시간 30분
산은 솟았고 나는 살아있으니..
걷는만큼 위로가 되어지는 시간.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다.
영혼에게 순수함을 전해주고
모든 것을 이 순간만큼은 잊어버리고
내가 내가 아닌 남이 남이 아닌 존재의 실체조차 잊은 채
오직 발걸음 하나에 모든 걸 집중하고 몰아치는 바람 속을 부유하듯이
봉우리 하나씩 차곡차곡 넘기면
차오른 숨은 일렁이는 바람이 위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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