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대산(九峯臺山, 870m 영월)
적멸이 있다.
2019. 2. 23. 토요일
법흥사~널목재~1봉~9봉~일주문, 7km
가려 했던 산은 구봉대산이 아니고
구학산, 주론산이었지만,
이번 겨울은 눈이 귀해 눈없는 구학산은 털빠진 닭이라고
산행지가 바뀌었다.
아홉 개의 봉우리 산이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인간의 태어남부터 유년과 중년, 노년를 지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아홉 개 봉우리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삶, 산행의 시작과 끝은 적멸의 법흥사다.
산세가 좋다.
영월의 첩첩산중 법흥천을 따라 들어가면 물줄기가 산으로 숨어버리는 깊은 곳에
별천지마냥 너르고 완만한 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세상 밖에 있는 듯 적막의 숲으로
규정 짓지 못한 계절을 걷는다.
걷다 멈춰서 막상 고요에 귀 기울이면 고요하지 않다.
새 울음소리, 바람이 애무하는 이파리 소리가 고요함 안에 가득하다.
숲의 청력을 얻는다.
마지;막 계곡을 지나며 된비알로 올린다.
지난 화요일에 강원도 산간에 눈이 왔다니
아직 겨울 안에 있기는 하지만
겨울은 아닌데 봄도 아니다.
겨울과 봄 사이의 띄어쓰기 한 칸처럼 언어로 규정짓지 못한 계절이다.
널목재에 올랐다.
널목재부터 구봉대산의 너그러운 숲은 편안한 오르 내림으로 긴장을 풀어준다.
좌측 사자산 가는 길은 폐쇄고, 우측 구봉대산 1봉 양이봉이 금방이다.
팻말과 시그널이 없으면 봉우리인지 느낄수도 없는 양이봉
1봉 양이봉(養以峰)이다.
뱃속에 잉태했다는 뜻
나무에 가려 풍경은 없다.
2봉, 아이봉(兒以峰)이다.
아이로 태어남.
3봉, 장생봉(長生峰).
자라서 어른이 됨.
바위가 솟았고 멀리까지 시선을 둘 수 있다.
볕 좋은 헬기장을 지나면 순한 산세로 솟은 4봉은 관대봉(官帶峰),
벼슬길에 나섬을 뜻한다
5봉 대왕봉(大王峰)은
바위 위에 뿌리 내린,
작지만 단단함을 몸으로 보여주는 소나무가 아름답다.
좁고 단단한 바위가 지배하는 야멸찬 터전 속에서 강한 끈을 놓지 않는다.
대왕봉은 큰일을 이룬다는 뜻을 담고 있다.
봉우리를 하나 지나면 가 금방 다음 봉우리가 나온다.
조금 탄력을 붙일려고 하니
이 산은 갑자기 바위산이다.
험한 바위는 우회로가 있어 위험하진 않지만
그래도 바위를 잡고 바로 올라갈 수도 있다.
넓적한 바위를 올라서면 지나왔던 봉우리와는 격이 다른
전망대, 6봉 관망봉이다.
법흥사가 있는 동쪽으로는 열린 낭떠러지다.
법흥사와 백덕산이 보이는 경치를 완성하는 건 죽은 소나무다.
아름답게 뼈대를 뻗어 올렸다.
우두머리 사슴의 늠름한 뿔처럼 화려하다.
6봉 이후로는 흙길이다.
7봉은 쇠봉(衰峰)
늙어가는 덧없는 인생을 뜻한다.
삶은 쇠락해 가지만 산은 여전히 고도를 유지한다.
숲에 둘러싸인 작은 헬기장 8봉이 최고봉이다.
북망봉(北亡峰),
생을 마감한다.
경치 없는 헬기장,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때 삶은 끝난다.
9봉으로 이어진 숲길.
눈이 녹으며 길이 진창을 이루고
겨울이 바람을 서서히 밀려온다.
9봉에 대한 기대를 잊어버릴 때쯤 9봉이다.
봉우리가 아닌 능선상의 전망대에 가깝다.
윤회봉(輪廻峰), 삶이 끝나도 삶은 이어진다.
하산길, 무전이 날아와 산대장이 산길을 재촉한다.
뭐가 그리 바쁜지,
조금만 천천히 걸어도 될텐데
질주본능,
질주본능을 감출 필요는 없지만, 본인이 좋아 빨리 걸어 먼저 내려서면
천천히 즐기는 사람도 생각해야 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길은 얼음 덮힌 급사면을 길게 치닫고 근육은 달궈져 있다.
발은 디딜 곳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손은 나무를 잡아 가며 균형을 잡는다.
잡념이 사라지고 산행에 몰입하면
번뇌와 망상이 적멸한다.
......
김종제시인 꽃차의 일부분이다.
......오늘
봄꽃처럼 달아오른 내가
차 한 잔 올리겠다고
꽃 몇 송이 던져놓았더니
살갗 가득 화상 입은 매화가
적멸처럼 가라앉는다
삶을 꽃처럼 띄워놓고
다가오지 못하게 후후 불면서
꽃차 한 잔 마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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