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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전북의산

모악산

 

   

 

모악산(794m, 김제)

 겨울에도 포근한 어머니의 산... 

 

 

 

 

 

 

 고은 시인은 모악산을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라고 읊으며, 

‘홀로 높지 않고 타지 사람들마저 품에 들여 마치 어머니 품 속 같다’고 했다.

 

어머니의 품속같은 모악으로.......

 

 

 

 

 모악산(해발 793.5m)은 전북 대부분의 시·군에서 그 웅장한 자태가 바라다보이는 대표적인 ‘평지 돌출산’이다.

모악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한반도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어 ‘어머니의 산’으로 불린다.

큰산을 뜻하는 옛말 엄뫼, 큼뫼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는데, 한자가 유입되면서 엄뫼는 어머니의 뫼라는 뜻의 모악(母岳)으로,

 

금산사와 귀신사를 거느린 모악산은 계룡산 만큼이나 각종 토착 종교의 산실이다.

 영험한 기가 뭉쳐 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증산교를 비롯한 숱한 신흥종교가 태동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복지사회를 제시하는 불교의 미륵사상이 개화했다.

 


 

모악산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과 김제시 금산면 경계가 되는 산.

 

  

모악이다.

 

높이 794m. 노령산맥의 말단부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선각산·국사봉 등이 있다.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모악(母岳)이라고 했다.  능선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동쪽 사면을 제외한 전사면이 비교적 완만하다.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구이 저수지에 흘러든 뒤 삼천천을 이루어 전주시로 흐른다.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두월천·원평천은 동진강에 흘러들며, 김제 벽골제의 수원이 되기도 한다. 기반암은 중생대 쥐라기의 편마상화강암·석영반암·대보화강암 등으로 되어 있다. 예로부터 이곳에 금이 많이 생산되어 금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주변에는 사금광산(砂金鑛山)이 몇 군데 있다. 또한 이 일대는 계룡산의 신도안(新都安), 풍기(豊基)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풍수지리설에 의해 명당이라 하여 좋은 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한때 수십 개의 신흥종교 집단이 성행했으며, 미륵신앙의 본거지로서 용화교 등이 일어났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한국 거찰의 하나인 금산사(金山寺)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호남 4경의 하나로 꼽힌다.  1971년 12월 이 산과 주변지역 일대를 포함한 총면적 42.22㎢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듯한 바위가 있어 ‘모악’이다.
모악산은 호남평야의 젖줄이며, 아래로  김제평야와 만경평야가 펼쳐진다.

 

 

 

 

 전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적이 있는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그의 저서 '나무야 나무야'에서

 '길고 부드러운 능선은 언제 봐도 그 푸근함이 어머니의 품 같았다'고 적고 있는 모악 그 품으로.....,

 

산행코스 : 구이동 모악산관리사무소-대원사-모악산-헬기장-신선대-금산사

3시간35분소요(점심포함)

 

 

 

 

 

 

 

 

 

 

 

 

 

 

 

 

 

 

 

 

 

급하지않은 산길을 올라 대원사에서 잠시 쉬고....,

 

 

 

 

 

 

 

 

 

 

 

 

 

 

 

 

 

 

 

 

 

 

 

 

 

 

 

 

 

 

 

 

 

 

 

 

 

 

 

 

 

 

 

 

 

 

 

 

 

 

 

 

 

 

 

 

 

 

 

 

 

 

 

 

 

 

 

 

 

 

 

 

 

 

 

 

 

 

 

 

 

 

 

 

 

 

 

 

 

 

 

 

 

 

 

 

 

 

 

 

 

 

 

 

 

 

 

 

 

 

 

 

 

 

 

 

 

 

 

 

 

 

 

 

 

 

 

 

 

 

 

 

 

 

 

 

 

 

 

 

 

 

 

 

 

 

 

 

 

 

 

(…) 산은 위로 오를수록 더 깊어지는데 / 나는 저 아래 도시에서 한 뼘이라도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 얼마나 얕은 물가에서 첨벙대기만 했던가 / (…)

/ 칡넝쿨을 만나면 칡넝쿨로 누워 얼크러지다가 / 시누대숲을 만나면 시누대로 서서 흔들리면서 / 산을 오른다 (…)
-안도현 시인의 '모악산을 오르며' 중에서 

......,

 

 

 

 

 

 

 모악산 서쪽 기슭에 금산사가 있으며,

미륵전(국보 제62호)은 현재 공사중이고

아래 작은사진들은 순서대로 미륵전 내 미륵불·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28호)

·5층석탑(五層石塔 : 보물 제25호)·방등계단사리탑(보물 제26호)

·6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 : 보물 제27호)·석련대(石蓮臺 : 보물 제23호)·

노주(露柱 : 보물 제22호)·석등( 보물 제828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국내 유일의 목탑형 전각인 미륵전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미륵전 안의 미륵불 높이(11.82m)에 감탄한다.

 

 

 

 

 

 

 

 

 

 

 

 

귀중한 국보와 보물 등 불교유적 10여 점이 금산사 경내 반경 100m 안에 널려 있다.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을 깨치고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던 견훤.

그에겐 당시 백성들의 희망이던 미륵불의 보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그는 미륵도량인 모악산 금산사에 공을 많이 들였다.

하지만 그가 넷째아들인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맏이인 신검과 둘째인 양검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견훤을 미륵전 지하에 석 달 동안 가둬 버렸다.

 미륵전을 겨우 탈출한 견훤은 왕건에게 투항했고, 이후 왕건이 황산벌에서 신검의 군대를 무찌르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던 비운의 아버지였다.

견훤이 갇혔던 그 미륵전이 바로 국보 62호인 금산사의 대표적 전각이며,

도립공원 입구의 '견훤성문'이라 불리는 돌무지개문은 신검이 아버지 견훤을 가둘 당시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호남 4경의 아름다운 산

모악산은 봄경치가 아름답단다. 모악춘경(母岳春景)은 호남사경(湖南四景) 가운데 제일로 꼽힌다니

4월에  벚꽃과 배롱나무 꽃 필때쯤.......,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