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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전남의산

조계산 : 山寺를 잇는 산길.


조계산(884m, 순천)

눈물 나는 가을에는 순천에 가라.




2019.   11.   2.   토요일

선암사-장군봉-접치재-연산봉-굴목재-천자암산-송광사 : 15.7km, 




가을은 감성의 계절이다.

괜스레 설레고, 괜스레 쓸쓸하다.

그런 날 위로가 되는 산이 있다.






선암사 가는길.

선암사는 가을에도 붐비는 사찰이다.

아직 단풍이 조금 이르지만 초입부터 불어드는 계곡의 바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을로 이어지고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에 눈을 씻다보면

그 절정은 화강암 장대석을 무지개 모양으로 연결한 승선교(보물 400호)다.








승선교는 지척의 강선루와 짝을 이룬다.

선녀가 내려온 누각 상선루降仙樓고,

다시 올라간 다리 승선교昇仙橋다.






독특한 모습의 연못인 삼인당을 돌아가면

아담한 선암사 일주문이 입을 열고 있다.

커다란 위용을 자랑하는 수많은 사찰들의 일주문과는 다르다.






선암사의 또 다른 자랑인 선암매 피고 지는 봄날이 아니므로

원통전 옆 담으로 600년된 매화나무는 남겨두고,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웅전과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을 휙 둘러보고 

'깐뒤'앞에서 한번 울어주러 마음이 바쁘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400년 된 변소

유홍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운치 있는 화장실이라고 극찬하였다.

전라도 순천 지방을 여행하다가 만약 똥이 마려워진다면,

좀 참았다가 기어이 선암사 해우소에 들어 볼일을 보라는 말이 있다.




선암사를 지나 장군봉을 오르면 좌측으로

평범한 암벽에 조각된 선암사마애여래입상이 반기면 이내








편백숲을 지난 가을 바람 소리,

굴참나무 낙엽이 바람에 실려 발길 사이로 까끌거리는 소리,

배낭만 메면 터져나오는 땀내 밴 숨가쁨이 어울린다.




조계산은 1948년 여순사건부터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슬픈 역사가 깃들어있다.

여순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군경에 의해 회복되자

좌익 반란군들은 조계산 속으로 퇴각했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여 벌교가 다시 좌익에 점령되었다가

 유엔군의 참전으로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이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무장투쟁을 계속하였다.

가을 볕에 조계산 등산로는 멋진 가을 길이다.

지금은 잘 가꾸어진 편안한 길이지만

예전에는 빨치산과 토벌대가 서로 쫓고 쫓기는 투쟁의 길이었다고 한다.






조계산 중턱에 옛 절터는 여전히 적막하고

절터 앞 옹달샘에는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데

마실 수는 없을 듯한데 스텐 그릇이 하나 놓여있다.












조계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의 길목으로

광주 무등산과 장흥 제암산, 보성 일림산을 거쳐 나온 줄기다.

 그리고 오성산을 거쳐 광양 백운산으로 가지를 뻗는 해발 884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동쪽 기슭에는 태고총림 선암사, 서편 기슭에는 조계종 삼보사찰로 이름난 송광사가 있어

산 이름도 국내 불교문화의 요람이란 뜻으로 조계曹溪라 얻었다.










장군봉에서 바라보는 조계산 능선은 부드럽다.

굴목재를 이어 붙이는 내림길보다 연산봉을 돌아가는 산세가 넉넉하고 만만해 보여

접치재로 내려선 후 연산봉으로 간다.










이 길 편안하고 참 허술하다.

까탈스러운 지점 없이 연산봉을 쉽게 내어준다.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는 832m 연산봉

돌아보면 장군봉과 걸어온 능선이 부드럽게 따라온다.








송광사 굴목재까지 내려온 산길은

다시 천자암을 가기 위해 천자암봉을 올라야 한다.

오름길은 길지 않고

천자암도 멀지 않다.










천자암 뒤뜰에 쌍향수로 불리는 곱향나무가 있다.

두 그루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였고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88호 곱향나무는 800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천자암을 떠나 송광사까지는 봉우리를 굽이 돌다가는 약간 내리막의 편안한 산길로

운구재까지 이어지다가 운구재에서 우측으로 내려서게 되는 이 길 또한 편안하고 따뜻하다.










산을 내려와 남도삼백리 길을 만난 후 곧 대나무 숲을 지나면 송광사에 이른다.

송광사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고 하며

신라 때는 길상사, 고려 때는 수선사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때부터 송광사로 불렸다고 한다.

소나무가 무성해 당시 불렸던 ‘솔개이메(솔강이메)’에서 유래해

솔을 송(松), 갱이(광이)를 광(廣)으로 옮겨 송광사라고 한 것이라고 한다.










송광사는 독특하게도 개울을 건너야 절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고

돌다리를 건너다보면 가을빛을 머금은 물에 내가 저기 있다.




시 한편 다시 찾아 읽고 찾아간 순천 조계산이었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해마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정호승, 여행, 창비. p101. 

세상이 각박하다고, 세상은 본래 그러하다고 그냥 지내면서, 감정을 억누르며 지내온 세월이,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라는 시로 눈 녹듯이 녹아버리고 말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눈물이 날 때는 울을 수도 있어야 해.

무언가 자신의 마음속에 꽉 차 있던 덩어리들을 한꺼번에 쏟아낼 수도 있어야 해.

   선암사, 해우소. 근심을 덜어내는 장소로써의 해우소.

  그 곳에 가서 자신의 근심, 걱정, 눈물들을 모두 쏟아내고

홀가분하게 돌아올 수 있다면

   눈물이 많은 이 시대에, 이 눈물을 어루만져줄 대상이 있다는 것, 그걸로 얼마나 다행인가.

   눈물이 날 때 그 눈물 속에 갇히지 말고,

눈물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눈물이 밑으로 쏙 빠지게 하는 곳

그런 곳에 가서 눈물을 흘리고 올 수 있는 그 곳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을 하고 나니

길가에 낙엽이 떨어진다.

출입구 맞배지붕의 곡선미가 고즈넉해 ‘뒷깐’이라고 쓴 나무표지판을 보고도 선방인 줄 알았고

그 곳으로 바람과 햇볕냄새가 난다.

낙엽이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싶어도 때가 되면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지고

아무리 썩지 않기를 원해도 떨어진 낙엽은 어느새 썩고 만다.

다만 그 썩음이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이냐가 다를 뿐이라고,

선암사 낙엽은 또 떨어진다.

충만으로 가득한 가을이라지만, 한 편으로는 짧은 해 스산한 가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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