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대(1433m, 구례)
부드러운 산들의 일렁임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수가 지키던 성터엔 비가 내렸고,
바람이 불어
꽃잎을 깨우던 비는 구름이 되어 피어오른다.
문을 지나 대간에 몸을 실었다.
2018. 5. 13. 일요일
가을이나 겨울에만 찾아들었던 만복대를 늦은 봄에 오른다.
구름많은 날씨를 예보하더니 구름이 걷혀버렸다.
어제와는 다른 하루의 시작
풍수적으로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는 만복대萬福臺,
경치로 보나 푸근한 산세로 보나 복스러운 산임에는 분명하다.
예보와 다르게 날씨는 청명하다.
지리산 만복대는 성삼재에서 노고단 쪽의 반대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지리산 줄기를 이어간다.
첫 번째 봉우리 고리봉을 둘러싼 철쭉은 아직은 숨을 죽이고 있지만,
여차하면 용기 있게 분홍색 파문을 일으킬 기세다.
지리산 서북능선에는 두 개의 고리봉이 있는데
높이로 구분해서
성삼재 곁의 1248m봉을 작은 고리봉,
정령치 곁의 1304.5m봉을 큰 고리봉이라 부른다.
작은 고리봉에 올라서자 지리산에 왔음이 실감난다.
반야봉의 튼실한 엉덩이며 노고단에서 성삼재로 이어진 우아한 능선이며,
볼 건 많은 산길이다.
소의 등처럼 편편한 만복대가 저만치 있고
꼬장꼬장한 심지 굳은 철쭉이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이곳에 이만큼 피어나면 소백산에도 금방 피어날텐데 하는 마음이 급해진다.
산이 아무리 완만해도
산은 많은 땀과 힘을 쏟아야만 오를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비 그친 다음날 햇살은 따갑고 습도가 많다.
걷는 걸음만큼 땀이 솟아난다.
줄서서 걷는 걸음이 더디다.
발품 파는 맛이 난다.
키 작은 철쭉과 억새 탓에 고도를 높이는 족족 시원한 풍경으로 되갚는다.
굽이치며 흘러가는 웅장한 산줄기에 속이 뻥 뚫린다.
스케일이 좋다.
지리산을 돌아보니,
성삼재와 노고단,
그리고 반야봉과 거대한 지리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 오고.
성삼재에는 차들이 가득하고.
성삼재에서 노고단에 오르는 길도 훤하다.
그리고 그 옆에 반야봉.
어린아이 엉덩이와 같은 두 봉우리가 정답게 다가온다.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고 하는데
노고단(1507m)을 한자로 老姑壇이라고 쓰고
姑자는 분명 시어머 고여서
시어머니는 과연 푸근할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거대한 능선이 수없이 뻗어 내려가고,
또 뻗어 내려가는 산,
지리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1만 가지 복을 가져다 줄 것 같은 만복대 정상에 오르면
지리산 주능선이며 남원 운봉 일대가 훤히 드러난다.
만복대 주변엔 아직 얼레지가 남았다.
올봄에는 얼레지와의 인연이 없더니 올해 처음 접견한 기쁨도 있다.
만복이 깃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복대라고 이름했나
늘 맑은 날씨이기를 바라면서 산에 오른다.
맑은 날 산에 오르면 멀리까지 다 내다 볼 수 있으니까.
굽이굽이 물결치는 능선과 능선,
능선 사이에 깃들어 있는 안개,
꿈의 세계에 올라와 있는 느낌을 간직하면서 다시 산을 꿈꾼다.
만복대의 아쉬움을 남겨두고
정령치를 향해 내려선다.
관광객들이 경치를 즐기는 정령치휴게소에서 산대장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건 뭐지~하는 맘이 생기지만,
산에서는 산대장의 말을 잘들어야 하니
정령치휴게소에서 선유폭포로 내려서며 맘을 달랜다.
선유폭포까지만....
괜찬다.
다음주엔 길게 걸을수 있을테니
걸음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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