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산(837m, 순창)
가을의 중심에서...
곱디 고운 고추장 빛깔로 기억되는 순창에 위치한
회문산(回文山)은 높이 837m의 산으로
회문산에는 한국의 5대 명당이 있어
이곳에 관을 보토하여 묘를 쓰고 나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고 전해와
무덤이 많은 산이다.
2017. 10. 28. 토요일
임실군 덕치치안센터 - 깃대봉(775m) - 천마봉 - 삼연봉 -
회문산정상(837m) - 노령문 - 회문산자연휴양림
약 9.7Km 4시간40분,
회문산은 예로부터 호남정신의 반은 순창에 있고
순창정신의 반은 회문(湖南精神半在淳昌 淳昌精神半在回門)이라는
말처럼 인물과 명당이 숨겨진 곳이라고 한다.
한말에 일제침략이 계속되던 무렵에는
회문산을 근거지로 하여 정읍에는 최익현 의병장이
임실은 임병찬 의병장이
순창은 양윤숙 의병장이 활동한 무대로
특히 순창방면의 양윤숙 의병장은 1천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회문산에 웅거하면서 왜적과 싸운
호남 제 1의 항일구국 유적지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에는 아픈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남부군의 소설과 함께 영화로 소개되면서부터 전국에 유명해졌다.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빨치산들이
북한정권에게마저 버림받은 채
남한의 산중에서 소멸되어 간 비극적 절규를 담은 내용으로.....
시간은 흘러
빨치산들이 두더지처럼 떨다 죽어간 아지트는
자연휴양림으로 개발되고
처참한 몰골들이 누워있던 곳은 체력단련장이 들어서고,
빨치산들이 은거하며 생활했던 터에는
통나무로 지은 산장이 들어섰다.
깃대봉을 거쳐, 회문산을 돌아 자연휴양림으로 산길을 넘어간다.
회문리를 거쳐 일직선으로 뻗어 급히 올리는 산길을 쉼 없이 오른다.
지능선에 올라서니 산색이 다르다.
높지 않은 깃대봉이 높게 느껴지는 산길이다.
며칠간 차가운 날씨에 적응했더니 갑자기 더워진 날씨가 산길 걷기엔 부담이 된다.
흐르는 땀을 감당하기 힘들만큼..
조선 최고의 풍수가로 알려진 홍성문대사의 옛집터다.
홍성문 대사는 회문산으로 입산 도통하여
회문산가 24혈의 명당 책자를 만들었으며
회문산에 24명당과 오선위기가 있어 그곳에 묘를 쓰면
당대부터 59대까지 운이 트인다고 주장하여
회문산이 한국의 5대 명당이 되었다고 한다.
또 이 산은 남한 최초의 조직적 좌익 게릴라부대였고
유일한 순수 유격부대였으며,
남한 빨치산의 전설적인 총수 이현상의 직속부대였던
남부군이 있던 산이다.
빨치산 전북도당사령부가 이용했던
깃대봉 9부능선쯤,
교통호가 이리저리 얽혀있는 지점을 지난다.
깃대봉정상에 정상석과 함께 무덤이 있다.
산줄기는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서는 길로 잠시 숨을 고른다.
능선에는 키 작은 관목류와 산죽이 주류다.
맑은 하늘 아래 나뭇잎이 가을색을 띄었다.
능선을 걷다보면 묘지가 많다.
좁은 암반 위에 축대를 쌓아올린 묘지가 있는가 하면,
거의 왕릉을 방불케 하는 커다란 묘지도 없지 않다.
이는 회문산의 3대 봉우리라 할 큰지붕과 장군봉(투구봉),
천마봉(깃대봉) 정상도 예외가 아니다.
이 산에 이렇게 묘지가 많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풍수 때문이라고
회문산은 예부터 한국 5대 명당 중의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 산으로
24명당과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묘지를 쓰면
당대에 발복해 59대까지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하니...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설 수 있는 삼연봉을 지나며 길이 편하다.
일단 능선 산길이 유순하니
앞선 일행들은 달리기 좋은 산인지
뒷꼬리도 잡히질 않는다.
지금 걸어가는 이 길에 꽃이 피었다.
온 산에 붉은 꽃이 피었는데..왜들 그리도 급한지,
이 산
걷기에 참 좋은 산이다.
좁은 성벽같이 우뚝 솟은 능선을 걷다보면
가을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높지 않은 이 산이 항일 투쟁지가 되고
빨치산 주둔지가 된 것이 왜 그러했는지를 알것 같다.
걸어온 능선길과
걸어갈 능선길이 한눈에 들어 찬다.
산 높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이 풍부한 깊은 계곡도 그렇고,
큰지붕 아래 천근월굴(天根月屈)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와
여성의 성기를 닮은 소나무(여근목)도 이 산의 음기와 관련해 해석한다고...
정상, 큰 지붕 뒷편엔 장군봉이있다.
빨치산과 국군토벌대 사이에 격전이 벌어진 곳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전장.
귀를 찢는 날카로운 총성과 사람들의 비명이 난무했을 산야,
진홍 핏물이 홍수가 되어 흘렀을.....,
“투구봉의 전경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중부 능선을 시퍼렇게 덮으며
밀려오는 국군 부대에 수백 명의 전투원들이
총탄과 수류탄으로 맞섰다.
곳곳에 흥건히 고인 빗물이 피와 흙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부상자고 전투원이고 이미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생지옥이었다.”
소설 ‘남부군’의 투구봉 전투 장면이 그린 모습이.....
큰지붕 아래 천근월굴(天根月屈)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천근월굴은 큰 구멍이 나 있는 바위로
두 세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과
정면에 상형문자로 천근월굴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강절 선생의 유가 시에 나오는 글로,
천근은 남자의 성,
월굴은 여자의 성을 나타내
음양이 한가로이 왕래하여 소우주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해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작은지붕에 올라 큰 지붕을 돌아보면
산이 평화로워 보인다.
음기가 강한 산임을 보여주는 여근목이다.
여근목의 생김새는 요상하고 희화적이다.
한국 전쟁의 화마와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 산에 불을 질렀음에도 여근목은 살아남았다.
회문산 작은지붕을 내려온 헬기장에서
앞선 이들의 발자욱을 따라 걷다
시루봉과 돌곶봉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자연휴양림으로 바로 내려서 버렸다.
이왕 내려온 길,
노령문에서 시간을 보내야 겠다.
노령문 윗쪽 출렁다리가 연결되어 있고
그 아래로 빨치산 총사령부가 있었다고 해서
총사골로 불리는 계곡으로,
구룡폭포가 있다.
출렁다리아래 노령문을 지난다.
회문산(回文山)은 본디 한자 표기가 돌아 나오는 문, 회문(回門) 이었다고 한다.
산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령문은
이 산의 회문 노릇을 하고 있다.
노령문에서 자연휴양림 매표소를 지나면 하산이다.
회문산 아래 멀리, 섬진강이 휘돌아 나가고….
들머리였던 깃대봉 동쪽, 섬진강 지류인 구림천 변에는
‘섬진강’으로 유명한 시인 김용택이 근무했다는 덕치초등학교가 있다.
이 세상
우리 사는 일이
저물 일 하나 없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변으로 가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 한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 보낼 일이다.
버릴 것 다 버리고
버릴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어둑거리는 강물에
가물가물 살아나
밤 깊어질수록
그리움만 남아 빛나는
별들같이 눈떠 있고,
짜내도 짜내도
기름기 하나 없는
짧은 심지 하나
강 깊은 데 박고
날릴 불티 하나 없이
새벽같이 버티는
마을 등불 몇 등같이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새벽 강물에
눈곱을 닦으며,
우리 이렇게
그리운 눈동자로 살아
이 땅에 빚진
착한 목숨 하나로
우리 서 있을 일이다.
김용택시인의 섬진강5 -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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