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봉산(1424m,인제)
꽃멀미나는 그대를 어찌 잊을까..
100대명산 90번째.
마음속에 쌓아 두고 있다가
문득...
떠올라
그리워지는 산이 있다.
바람과 구름을 품고서
산마루의 끝없는 겹침,
참을 수 없는 자연,
온 몸을 던져 그 속을 헤메느라면 무의식중에 알게 되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이 부드러운 산줄기를 잊을 수 없다는 걸.
삶에 힘겨울때 불쑥 떠올라
위로가 되고
그리움이 될테니...
어느듯 짙어진 여름날
꽃 향기 은은한
그리운 곳을 그리워하다가
그리움이 짙어져
무얼 해도 그리울 때는
그리움을 찾아 나설수 밖에......
2015. 6. 21. 일요일
변화심한 날씨
곰배골-공배령-작은점봉산-점봉산-망대암산-큰원진개골
약 15km, 10시간 40분 소요.
점봉산(點鳳山)의 옛이름은 덤붕산이었다.
산이름중 덤이나 둠은 '둥금(圓)'의 뜻이 있어 꼭대기가 평탄하거나 둥그스럼한 산에 사용되었다고 하고,
덤붕산을 한자로 바꿔 표기하면서 점봉산이 되었다고 한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에 위치한 높이 1424m다.
강원 인제(麟蹄)는 한자로 ‘기린발굽’이란 뜻이고,
그중에서도 기린면으로 들어간다.
고구려 땐 ‘돼지족발’을 뜻하는 저족현(猪足縣)이었다고 한다.
인제는 1000m 넘는 산이 무려 96개나 된다.
사방에 우뚝우뚝 기둥처럼 서 있다.
설악산, 향로봉, 점봉산, 방태산, 가칠봉, 한석산, 매봉, 안산, 가리봉, 가마봉….
그 아래로 800m 이상 봉우리 200여 개가 첩첩이 틈새를 메우고 있다.
밖으로 한 번 나가려 해도 진부령(529m) 미시령(826m) 한계령(935m) 곰배령(1164m) 단목령(760m) 북암령(925m) 조침령(770m)
같은 큰 고개를 넘어야 했다.
‘하늘이 3000평’이라는 말이 있으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오늘 하산지점인 큰 원진골 끝 필례약수부근이라는
이순원 소설속 은비령에 머물고 싶기도 하다.
하얀 겨울.
그때쯤,
눈이 은비가 되어 날리고,
필례골의 돌틈 사이로 가파르게 여울이 흐르는 곳......
지독한 가뭄이었다.
소양강 물이 다 말라 강원도지역은 제한 급수를 한다는데,
적은 량이지만 모처럼 단비가 내린 다음날이다.
곰배골로 시원한 물줄기가 콸콸 쏟아져 내리고 있다.
곰배령이다.
해발 1164m에 위치한 초원지대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곰이 하늘을 향해서 배를 내밀고 누워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곰배령`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었다.
수천 평에 이르는 곰배령 일대에는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진다.
봄에는 산나물이 풍성하게 돋아나 향기가 가득하고 철 따라 작은 꽃들이 화원을 이룬다.
가을에는 나무가 단풍으로 물들어 곰배령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겨울에는 무릎까지 눈이 쌓이면서 새하얀 설원이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곰배령 남북으로는 점봉산과 가칠봉이 솟아있다.
지금 길 위에 서 있다.
숲의 길,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내가 선 능선에서 동쪽으로 몸을 틀면 단목령을 넘는 길이고,
북쪽으로 가면 점봉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점봉산을 지나 계속 걸어가면 백두대간길로 설악산이 나온다.
설악산을 넘어가면 동해바다 푸른 물결 앞에 서겠지.
점봉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든다.
곰배령에서 점봉산으로 가는 길은 편안하다.
곰배령에서 맑았던 하늘은 산등성이를 타고넘는 운무로 갑자기 흐려진다.
그래도 산모퉁이 하나를 돌면
그때마다 구름에 가려 있던 봉우리들이 숨바꼭질 하듯 모습을 살짜기 드러낸다.
작은 점봉산 너머로 점봉산에 짙은 구름이 지나가고,
기온도 내려간다.
골은 골을 부르고,
뫼는 뫼를 불러
어디가 뫼고
어디가 골인지 알수 없다.
산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어 산들이 켜켜이 쌓이고
첩첩이 늘어서 그끝을 알수도 없고,
그저 산들이 이어져 이곳까지 닿아 있다는 걸 알수 있을뿐이고,
그렇게 이어진 능선을 저 먼곳가지 이어져 간다는 그것만 알수 있을것 같다.
바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그래서 어디까지 불어갈지도 알수 없다.
아무것도 알고 있는 것이 없으니
내가 가야할 길조차도 알지 못하겠다.
그저 발아래 놓여있는 길이 이끄는 대로 그저 그렇게 나아갈 뿐이다.
이산은 처음부터 정상까지 완만하기만 하다. 숲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다. 조금 가파른가 싶다. 이름 모를 고산풀들이 줄지어 이어진 끝에 이윽고 하늘이 보였다. 키 낮은 활엽수림이 뚝 끊기고 풀꽃밭이 환히 드러나 보이는 하늘밑이다. 다 올라왔지만 역시 산속, 산 뒤에 산이고, 산 앞에 또 산이다. 잠시 머물다 곧 내려가야 한다. 점봉산의 북쪽은 설악산(1,708m)과 한계령으로 이어지고, 남쪽은 가칠봉(1,240m)의 능선으로 연결되어 백두대간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점봉산은 2002년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명산으로 지정되었지만, 2003~2005년에는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 되었다가, 2006년부터는 국립공원 비법정 탐방로로 묶여 2026년까지 출입이 금지되어지고 있는 산이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길이 늦게나마 산길 흉내를 낸다.
짙은 구름 너머엔 대청봉이 있을텐데,
이 능선을 타고 망대암산으로 간다.
망대암산에서 돌아본 점봉산.
다시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저 아래 십이담계곡을 지나면 주전골이다.
주전골은 도적들이 이 골에서 엽전을 만들었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이고
망대암산은 주전골과 연결된 이름으로 관군이 오는가 망보던곳이라하여 망대암산이 되었다 한다.
대청은 구름에 숨었지만,
너덜길 쏟아내는 귀때기청봉과
서북능선 끝자락 안산이 살포시 보인다.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과 마주보며 솟은 점봉산이다.
확실히 설악이 화려한 산세고
걸어온 점봉은 수수하다.
12담계곡 갈림길 전....
그어디쯤에서,
큰 원진골로 내려간다.
물론 길 없는 산죽밭을 뚫고 간다.
나무 등걸 하나 돌아서다 보니 앞선이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앞서서 길을 찾아가는 이도 힘들고,
그 뒤를 따라 그 뒷꼭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이도 힘들기만 하다.
너무 멀리 말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앞선이가 나아가 주기를,
내 팔이 닿는 거리 안에서 동료가 앞에 있어주기를 바라던 마음으로 산죽밭을 뚫어 작은 개울에 도착한다.
큰원진개골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어제내린 비가 양이 많지않아
가뭄이 해소되진 못했다.
그래도 계곡 물소리가 들리고,
산새 울고
즐겁다.
원진계곡은 찾는이 없는 원시 계곡처럼
너덜길이 쌓이고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고있어
소요시간이 오래 걸린다.
설악산의 다른 계곡들은 빈 공간의 정물처럼 오롯이 남아있지만,
이곳은 고사목과 태풍에 잘려나간 고목과 바윗돌이 공간을 다 채워버렸다.
잘못디디면 쌓인 바위돌 굴러 내리니
몸은 자꾸 멈칫거리고 시간은 오래 걸린다.
점봉산은 산림유전자보호를 목적으로 365일 통제구간이다.
..... ,
내 앞을 가로막는 것,
단순한 금줄하나인데...
그 금줄을 넘기가 힘이 든다.
..오늘도 마음에 무거운 짐 하나 넣어두고 금줄을 넘어 길을 가로질러 버렸다.
길의 곳곳에 새치처럼 그리움 한자락씩 살짜기 뿌리며.....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은 언제나 내 앞에 있고,
언제나 이어져 있다.
때로 키 낮은 잡목 사이로 휘어들고,
때로 참나무 숲 사이로 숨어들어 없는 듯 했지만 언제나 앞에 나타나곤 한다.
때로 하늘로 치솟기도 하고 때로 땅으로 꺼지기도 하여 사라진 듯 끊어진 듯 했지만 길은 언제나 이어져 있다.
내 앞에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따라 때로 걷고 때로 앉아 쉬며 지나는 바람소리를,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듣곤 한다.
때론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듯 했고,
때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침묵뿐이다.
마치 내가 침묵의 서약을 하고 길을 가는 수도자가 된 것만 같다.
지나는 길에 함박꽃 피어 즐겁고,
갖가지 향기 날리어
아찔할 만큼 꽃멀미 나 행복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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