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산(1046m・ 거창)
소뿔위 忙中閑
어떤 날은 이 길로,
어떤 날은 저 길로.
이 길은 밝고 훤해서 좋고,
저 길은 바람이 많아 좋다.
한낮에는 떠나지 못한 여름이 가을의 시간 속에 머문 듯한 가을에
우연히 우두산에 출렁다리가 놓였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리는 이미 완공은 되었지만 내년 봄에 치유의 숲으로 개통할 예정이라는
Y자형 출렁다리가 궁금해져 우두산 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2019. 10. 19.
고견사주차장-Y출렁다리-마장재-우두산-의상봉-고견사-견암폭포-주차장
원점회귀산행, 7.26㎞.
산행 들머리인 고견사 주차장에는 짙은 안개가 자욱하고
마음이 설렌다.
바리봉으로 올라가서 장군봉, 지남봉을 거쳐 의상봉에 오르고
마장재를 지나 Y다리로 내려오는 길이 거리도 적당하고
볼거리도 더 많을테지만
Y다리가 많이 궁금하고 사람들이 오르기 전에 미리 가보고 싶어
마장재로 올라 우두산 상봉과 의상봉까지 걷기로 했다.
출렁다리를 미리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산길에 접어드니
안개를 뚫고 빛이 숲으로 스며들고
마장재 가는 갈림길에서 아직은 이정표에 표시되지 않은 다리를 보러 간다.
벌써 완공된 거창 우두산 출렁다리는
독특한 Y자형 다리로 내년 봄(4월)에 개통될 예정이고 아직은 출입통제구간이다.
산위에 설치된 다른 출렁다리와 달리 외형이 독특한 Y자형으로
다리를 받치는 기둥 없이 해발600m 계곡 바위 세 군데를 연결해서 설치되어 있다.
한참을 머물다가 잠시 출렁다리를 건너 본 후
마장재로 오른다.
구름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마장재는
비계산에서 흘러내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이 이쁘다.
높은 습도에 여름처럼 흐르는 땀 닦고 쉬다가 우두산 상봉을 향한다.
어느 순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거대한 바위가 눈앞에 나타나면
길에 놓인 바위에 올라가 한참 동안 사진 찍느라 신나
지루하지 않은데다 거친 바위를 타는 재미 또한 쏠쏠해서 좋다.
운해가 옅어지고
가조 들녘의 누런 들판이 드러난다.
가파른 흙길을 걷다가 코끼리바위를 지나
잠시 오르면 우두산 상봉이다.
나무가 시야를 가리거나 구름이 가야산을 가리고 있다.
우두산 상봉에서 내려서다 보면
의상봉은 오름 계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의상대사가 참선한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의상봉
기다란 계단을 꽤나 올라가면
힘든 만큼 경치가 좋고 바람 시원하다.
의상봉과 우두산 상봉은 가야산국립공원의 남서쪽 끝자락에 포함돼 있고
상봉과는 달리 의상봉은 전망이 좋다.
상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끝에 솟은 산은 비계산이고
그 뒤로 멀리 철탑이 있는 곳이 오도산
그 너머 울퉁불퉁한 산은 황매산이다.
가야산에서 서쪽으로는 능선이 좌일곡령과 단지봉, 수도산을 이어
덕유산까지 이어진다.
향적봉에서 남덕유까지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덕유산 능선도 한눈에 들어오고
멀지만 남서쪽으로 지리산도 시야에 들어오는 전경은 아찔하다.
뜬금없는 우두산 정상석 있는 장군샛길로 고견사로 내려선다.
급경사 돌길을 내려서니 암벽 아래 불상이 있고
그 아래에 샘이 있다.
신라 문무왕 7년(667년) 의상과 원효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우두산 중턱에 있는 고견사는
원효대사가 절을 창건할 때 이곳에 와보니
전생에 와 본 곳임을 깨달았다는 데서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졌다.
대웅전 뒤편 암벽 위에 바위를 깎아 만든 마애석불과
17세기에 만든 보물 1700호 동종이 있고
절 입구에는 수령 1000년의 보호수 은행나무가 서 있다.
계곡을 끼고 산길을 제법 걸어 내려오면 바위지대 급경사를 이루고
폭포를 만난다.
견암폭포로 고견사 주차장 바로 위에 있다.
치유의 숲 조성 공사가 한창으로 주차장 위쪽은 아직 어수선한 걸 보니
치유의 숲 조성 공사가 완료되지 않아
Y출렁다리 개통이 연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든다.
뜬금없지만, 살다 보면 시작은 하지만 끝을 보지 못하는 일이 많고
또는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자고 자신을 채근하고 있을 때도 있다.
내 부족한 인내심을 책망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실패가 가져다 줄 낭패의 삶을 탓하기도 하는데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저 내 삶인데 왜 나를 탓할까?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보다는,
‘가다가 아니 가면 안 간만큼 이득이다!’라고 해야 할까.
가다가 포기했다면 가지 않은 이익을 생각하며
“잘 포기했어~”라고 할 일이고,
다 갔는데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없었다면
간 만큼의 이익을 생각하며 “그동안 수고했어~”라고 할 일이다.
자신을 탓해봐야 남는 게 있나? 마음만 쓰리지...
억지의 논리지만 아직은 그런 논리가 필요한 때이고
지금의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게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