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火旺山
756m, 창녕
가을로,
경남 창녕군 화왕산은 억새산이다.
백두산이나 한라산처럼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산으로
분화구였던 자리가 움푹 패어 있다.
바로 이 자리에 드넓은 억새밭이 있다.
산 정상이나 맞은편 배바위(680m)에 오르면
어느 곳에서나 24만㎡의 억새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2018년 9월 9일 일요일
자하곡-1등산로(암릉)-배바위-화왕산성 서문-화왕산-제3등산로-자하곡
화왕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옥천 매표소에서 출발해 옥천 삼거리와 허준 세트장을 거쳐
화왕산성 남문까지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길과
자하곡 매표소에서 도성암을 지나 화왕산성 서문으로 오르는 길의 두 가지고
자하곡매표소에서 오르는 길은 짧지만 가파른 편이다.
임도를 따라가면 1·3 등산로 갈림길
1등산로로 오르면 잠시 후 다시 1·2 등산로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1등산로로 올라가면 가파른 암석으로 된 길이 계속된다.
허연 속살을 드러낸 기암괴석들이 정상부까지 층층이 쌓인 벼랑 사이로 난 길이다.
층층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 산을 감싸고 있다.
암릉의 끝자락 능선에 닿으면서 산세는 한순간에 변한다.
눈앞에 거대한 화산분화구의 광활한 산상 분지가 놓여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억새평원이다.
반면 산 남면은 칼날 같은 직벽의 천 길 낭떠러지다.
배바위.
노아홍수처럼 천지개벽 때
배를 묶어둔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2009년 억새태우기 도증 참사가 발생 했던 배바위 부근이다.
배바위에서는 말안장처럼 생긴 고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부딪히는 햇살,
일렁이는 물결,
바람을 등에 업은 갓 피어난 억새는 온몸으로 고원을 휩쓸고 있다.
1597년 곽재우 장군이 정유재란 때
7만 왜군을 물리쳤던 화왕산성이 정상부 동쪽과 서쪽에 놓여있다.
함양 황석산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이 피눈물을 흘려
화왕산 계곡에 붉은 노을이란 뜻의 자하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아직은 푸른 억새로
화왕산 정상부에 펼쳐진 억새 군락지인 분지는 오래전 화산이 폭발한 분화구였다
화산 폭발로 인해 산 정상부의 가운데가 쏙 들어간 것이 옴팍하고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구덩이처럼 내려앉은 26만㎡에 이르는 분지가 온통 억새로 채워져 있다.
아직은 자줏빛 꽃을 피운 억새들이 바람을 따라
일렁거린다.
'창녕 조씨 득성비'
신라 진평왕 시절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병에 걸려
치료를 위해 화왕산에 올라 용지에서 몸을 씻었더니 아이를 배었다고
꿈에 신령이 나타나 아이는 용의 자식이며
태어나면 겨드랑이에 '조(曺)'라고 적혀 있을 것이라 했다.
예향이 몸을 풀고 나서 임금이 불러서 보니 모두 그대로였기에
창녕 조씨 시조로 삼고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했다고 한다.
화왕산 억새밭 중간 지점에 있는
구천삼지(九泉三池: 9개의 샘물과 3개의 연못) 중 가장 큰 연못.
동문에서 북쪽으로 돌담을 따라가면 화왕산 정상에 이를 수 있고
한낮의 햇살에 반짝이는 광활한 억새밭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아직은 조용한 화왕산 억새를 맘껏 즐긴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리 보인다
억새는 9월 말에 꽃을 피워 시간이 흐르면서 갈색으로 바뀌고
다시 은색으로 나중에는 흰색으로 변한다.
능선 볕 잘 드는 곳을 따라 이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직은 여린 억새다.
오른쪽으로는 깎아지른 벼랑이 이어지고,
왼쪽으론 파도를 이룬 억새가 물결을 일으키며 끝없이 밀려왔다.
화왕산은 임금 왕(王)자를 써서 ‘불의 왕’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성할 왕(旺)자로 바뀌었다.
고려 개국 후 왕건이 신하를 시켜
전국의 왕(王)자가 들어가는 산의 이름을 모두 바꾸도록 했다는 설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왕(王)자 앞에
일본을 뜻하는 날 일(日)을 넣은 왕(旺)자로 바꾸도록 했다는 두 개의 설이 있다.
어찌됐든 화왕산은 불의 왕, 불이 성한 산이라는 의미다.
화왕산 정상에서 길이 편안한 3등산로를 따라
도성암을 거쳐 자하곡으로 내려선다.
가을로 간다.
하늘 맑은 날에
느리게 걸으면 계절타고 흐르는 가을빛을 다 볼수 있을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