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정신 문화 (대구어디까지 가봤니? 15번째)
도동서원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으며,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9개의 서원 중 하나인 도동서원(道東書院)
사적 제488호로, 1605년(선조 38) 지방 유림에서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옛 버릇을 철저하게 없애라
욕심을 막고 분함을 참아라
가난에 만족하며 분수를 지켜라
날마다 새로워지는 공부를 하라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마지막을 시작할 때처럼 조심하라…
달성군 도동서원 대문 앞에 우뚝 선 커다란 은행나무가 ‘김굉필 나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2002년경이다.
도동서원을 처음 지으면서 심은 이 나무는 서원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그저 ‘서원목’(書院木)으로만 불리던 도동서원 지킴이 나무였다.
나무의 이름이 된 김굉필(宏弼, 1454~1504)은 서울 태생이지만 청소년기를 대구의 현풍 지역에서 보낸 인물로,
고려의 정몽주에서 조선의 김종직으로 이어진 성리학의 정통성을 지킨 사림(士林)세력의 중추였다.
연산군 재위 시절인 1498년에 신흥 세력을 경계하기 위해 훈구파들이 일으킨 무오사화에 연루돼 억울한 죽음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대학자였다.
그는 중종 반정(反正)으로 조광조가 정치세력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복권되어
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과 함께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추앙됐고,
대구 지역 정신사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선조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도동서원은 그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외증손인 예학자 정구(鄭逑, 1543~1620)가 세운 400년 전 건축물이고
서원 앞의 은행나무는 완공을 기념하여 정구가 손수 심었다.
25m의 큰 키에 줄기 둘레가 8.7m에 이르는 김굉필 나무는 사방으로 30m 가까이 나뭇가지를 펼쳤는데, 그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만히 땅바닥에 내려앉은 남쪽의 굵은 가지가 펼쳐 보이는 나무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북쪽의 큰 가지는 30년쯤 전에 부러지면서 전체적인 균형은 깨졌지만, 오히려 비상하려는 몸짓이 느껴질 만큼 나무는 웅혼한 기상을 갖췄다고 한다. 한국의 명복으로 꼽히는 "달성도동서원은행나무" 일명 김굉필나무 수령400년의 은행나무로 가지가 땅에 닿았다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도동서원의 환주문. 갓을 쓴 유생이라면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문의 높이가 낮다. 조선 최고의 유학자를 모시고 있는 신성한 곳이니 겸손한 마음으로 몸을 숙이고 들어오라는 뜻이다.
도동서원강당사당부장원 [道東書院講堂祠堂附墻垣] 좀 어렵다......그래서 문화재청이 이름을 살짝 바꿨다 "달성 도동서원 강당 사당 및 담장"
보물제 350호다 중정당 축대 아래 진입로에 무거운 짐을 이고 천천히 전진하는 인상파 거북이 조각과 구성미가 돋보이는 축대의 아름다움은 이 서원만의 자랑이다.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4개의 용머리 낙동강 범람을 막기 위한 비보책으로 설치되어있다. 기단에 다람쥐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올라가는 형태로...외쪽으로는 내려오는 다람쥐가 놓여있다 사당(제향영역)으로 가는 계단 중간에 조각된 용머리
'여행이야기 >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령시 36회 한방문화축제 스케치 (0) | 2013.05.09 |
---|---|
청도 프로방스 (0) | 2013.04.15 |
두사충과 모명재 이야기(대구이야기) (0) | 2012.12.05 |
혼신지-피카소그림같은 일몰 (0) | 2012.11.26 |
안동 벽화마을(신세동) 들어 봤니껴? (0) | 2012.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