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정호승
겨울 아침에 나무가 햇살을 등지고
무심히 자기의 그림자를 내려다본다
한 사람이 나무의 그림자를 밟고 지나간다
또 한 사람이 나무의 그림자를 밟고 지나간다
바삐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앉은 새의 그림자를 짓밟고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천천히 나무 속으로 걸어들어가
아예 나무의 그림자가 되어버린다
그 사람
봄이 되면 꽃으로 피어난다고 한다
광화문 백목련으로 먼저 피어나고
소백산 철쭉으로 무더기로 피어나고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의
키 큰 접시꽃으로도 피어난다
정호승 시집 《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에서
소백산 철쭉이 피었다
몸도 마음도 고단한 시간을 견뎌
길섶에 피어난 철쭉이
그 사람을 만난 듯 반갑다.
“그 사람
봄이 되면 꽃으로 피어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