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산
오서산(烏棲山・791m, 홍성)
'서해의 등대산'으로 불려왔다는 충남 제 3의 고봉 오서산(790.7m).
정상을 중심으로 약 2km의 주능선이 억새밭으로 이루어져 억새산행지로 불리는 산이다.
오서산은 까마귀와 까치들이 많이 서식해 산이름도 "까마귀 보금자리"로 불리어 왔으며
차령산맥이 서쪽으로 달려가 정암사를 품고있는 금북정맥의 최고봉이다.
2019. 10. 12. 토요일
상담주차장-정암사-(광천)오서산-(보령)오서산-시루봉-성연주차장
가을 산행은 단풍산행과 억새산행이 주류다.
특히 억새산행은 영남권의 산들은 가볍게 다녀올 만한 억새산행지가 즐비하다.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 천성산, 화왕산 등 전국적 명성의 억새산행지가 가까이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꾼들은 보다 새로운 억새산을 찾아 헤매기 일쑤다.
억새군락지의 규모 면에서 떨어지더라도 멀리 있으면
가까이 있는 산들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느껴보고자 하는 마음일꺼다.
오서산은 서해안의 산답게 육중한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둔산(879m) 계룡산(847m)에 이어 충청남도에서 세 번째로 높다.
천수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야트막한 바닷가 산들에 비해 월등히 높고
정상에서 오서정에 이르는 2㎞ 남짓한 능선에는
넘실대는 억새가 서해의 잔잔한 파도, 시원한 바람,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독특한 가을산의 풍경을 연출한다.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상담주차장 상담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해
마을을 가로지르면 정암사 가는 계곡길이다.
곧 왼쪽 쉰질바위로 가는 길과 오른쪽 정암사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
정암사 오름길을 따라 제법 숨을 헐떡이며 오르면
제법 큰 느티나무가 버티고 선 정암사가 나타나
벼랑 위에 높은 담장이 있고 그 너머 운치있는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들어서면 극락전이 나오고 담장 쪽에 화강암 탑도 보이는
이 절은 고려 때 대운대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또 백제 무왕 때 무렴국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정암사를 되돌아 나와 화장실 앞에서부터 계단으로 된 오름길로
지금부터 8부 능선까지 1600개의 계단이라는데 숫자를 눈으로 본 순간 막연히 숨이 막힌다.
키가 작은 솔숲그늘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푸른 하늘이 열리고
그 하늘 밑 오서산 능선 은빛 억새가 건듯 불어오는 바람에 출렁일 때
밤하늘 은하수같이 반짝인다.
지도에 표시 된 오서정은 어느해 태풍에 사라져 버렸고
광장과도 같은 목재데크가 그 자릴 차지하고
제법 풍성한 느낌을 주는 억새보호를 위해서 깔아놓은 데크 끝에
광천특우JC가 세운 정상석이 하나있다.
삼국사기에 오서악(烏西岳)으로 기록되어 국가차원의 천제를 올렸던 곳으로
백제부흥운동의 정신적 중심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태양 안에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가 살고,
신의 사자로서 천상과 인간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라는
우리민족의 태양숭배사상이 묻어났던 산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까마귀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오서산 억새지대는 오래 전 활엽목 지대였으나 화재나 전쟁 통에 나무가 사라지고
억새가 자리바꿈한 것으로
키가 작고 부드러운 것이 영남알프스 천황산 억새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오서산 정상에는 테크가 놓여졌고 큰 정상석은 보이는데
예전에 봤던 그보다 작은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산 아래 천수만을 바라보며 천수만과 원산도 등 서해안의 크고 작은 섬들이,
동쪽은 고추로 유명한 청양군의 농촌마을들이 훤하다.
걸어 온 길 돌아다 보면 능선을 따르는 길은 흔들리는 억새가 흐르고
벌써 멀리 오서정 자리에 설치된 전망데크가 보인다.
완만하지만 암릉이 자리한 능선길을 내려서면
억새들은 사라지고 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주는
해발 570m인 시루봉이다.
짙은 숲길인 가파른 산길을 내려와
잠시 후 만나는 임도를 가로질러 묵은듯한 소로를 따라 내려서면 성연마을에 닿는다.
덥고 습하던 날씨는 어느새 사라지고 오름길에 흘린 땀이 산바람에 식으면
살짝 한기를 느끼기도 하는 날씨가 되었다.
요즘 박준 시인의 시를 좋아해서 그의 詩 ‘나란히’
나란히
새벽의 오한은 어깨로 오고 인후와 편도에 농이 오고 눈두덩이가 부어오고 영은 내 목에 마른 손수건을 매어 주고 옆에 눕고 다시 일어나 더운물을 가져와 머리맡에 두고 눕고 이상하게 자신도 목이 아파오는 것 같다고 말하고 아픔 와중에도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웃고 웃다보면 새벽이 가고 오한이 가고 흘린 땀도 날아갔던 것인데 영은 목이 점점 더 잠기는 것 같다고 하고 아아 목소리를 내어보고 이번에는 왼쪽 가슴께까지 따끔거린다 하고 몇 해 전의 일을 영에게 묻는 대신 내가 목에 매어져 있던 손수건을 풀어 찬물에 헹구어 영의 이마에 올려두면 다시 아침이 오고 볕이 들고 그제야 손끝을 맞대고 눈의 힘도 조금 풀고 마음의 핏빛 하나 나란히 내려두고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65쪽 詩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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