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적봉&덕산기계곡 ; 정선가는 길
덕산기 계곡(강원도 정선)
까다로운 곳.
덕산기 계곡은 접근이 참 까다로운 곳이다.
가는 길이 어렵다기보다 진면목과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분단장하고 난 이후의 모습은 타이밍 맞추기가 쉽지 않다.
여간해선 곁을 내주지 않는다.
이 계곡은 물빛이 좋다.
물빛은 비가 온 뒤 생긴다.
많은 비가 내리고 흙탕물이 가라앉을 즈음 계곡은 아름다운 옥빛을 드러낸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는 게 문제다.
물이 쉬 빠지는 지형이기 때문이다.
많은 비가 와도 1주일 정도면 물이 빠진다고 한다.
그러니 도시인이 '립스틱 짙게 바른' 덕산기 계곡과 만나려면 많은 비가 내리고,
흙탕물이 가라앉고, 담긴 물이 빠져나가기 전에 찾아야 하는데
2018. 8. 11. 토요일
덕우삼거리-사모바위-취적봉-강릉유씨묘-덕산기계곡
딱 오년 만이다.
정선 덕산기 계곡
취적봉을 돌아 덕산기로 내린다.
폭염에 한참을 가물었다가 5일전에 비가 내렸다는데,
기억속 덕산기계곡은 편안함이었기에 다시 설레기도 하고
계곡자체가 건천이어서 물이 다 스며들어 쨍한 자갈만 있을까봐 불안하기도 하다.
여전히 더운 날씨다.
덕우삼거리에서 사모바위를 거쳐 취적봉을 오른다.
5년전에는 낙모암에서 보는 물길의 경관이 좋았었는데,
이 길엔 사모바위가 있다.
사모바위 위에서 어천의 흐름을 쫓을 수 있을까.
사모바위 좌측으로 등로는 열려 있지만
우측으로도 오솔길이 보인다.
조심조심 한발씩 내 딛다가 앞을 막아서는 벼랑, 뼝대다.
혹시 이 비탈길에 조금 내려서면 우회로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더 험해 진다.
한참을 돌아나와 등로에서 상부로 사모바위에 올랐다.
아래로 절벽이 아슬해서 앞으로 고개만 내밀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스라한 절벽 위 거세게 휘도는 어천을 수직 낙하, 한참이고 내려 보면 몸을 빨아들일 듯 유혹한다.
제법 많은 양의 땀을 흘리고
제법 진정되지 않는 가뿐 숨을 내지르고 있는데
산행 들머리가 여전히 발아래에 있다.
계곡을 이루는 직벽의 바위산인 취적봉
불 취(吹), 피리 적(笛)자를 쓰는 취적봉은 피리부는 산이란 뜻으로
연산군의 아홉 살짜리 아들이 이곳 유천마을 버드내로 유배돼
감자로 목숨을 연명하며 고향생각을 달래다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전한다.
취적봉 북쪽 덕산기는 산아래에 숨었고
강원도의 산들이 겹치고 겹쳐있다.
몇차례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린다.
길은 물기를 머금어 미끄럽다.
강릉유씨묘 부근,
이 길의 하산 지점인데 미끄럽고, 경사가 급해 자칫 방심하면 위험해
조심조심 내려서다보니
경기도에서 산행오신 분 중 한분이 쓰러져 있다.
다리뼈가 완전골절이 된 것 같고 부목으로 감싸 놓았다.
이 길은 너무 험해 구조대원이 환자를 업거나
들것에 들어 옮길 수 있는 상황이 안 될 것 같아 걱정이 든다.
된비알로 50여분 계곡에 내렸건만
물소리....들리지 않는다.
계곡이 가물었다.
가물었어도 가끔 만나는 물빛은 보석 같이 맑은 물빛을 만날 수 있다.
덕산기계곡은 넓고 부드러우면서 환하다.
덕산기 물길은 본래 정선읍과 오지마을 북동리를 잇는 옛길이었다.
그러던 것이 문치재를 넘어 북동리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놓이면서 옛길은 흐려졌다.
쓰임새를 잃은 옛길이 몇 번의 수해로 끊기면서 길은 아주 잊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이곳을 찾아낸 오지여행자들이 저희들끼리 쉬쉬하며 드나들면서
덕산기계곡이 알려졌다.
비와야 폭포다.
뼝대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수직의 물길만 보이고
물은 보이지 않는다.
비가 많이 오면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해서 비와야 폭포다.
쏟아 내리는 폭포가 장관일 테지만
지금이 흔적만 있다.
비가 와야 폭포가 된다는 이름이 재미있다.
물이끼 낀 웅덩이를 지나 사라졌던 물길이 맑은 물로 다시 솟아나면
차가운 물은 등허리를 따라올라 머리끝까지 냉기를 뻗쳐 올린다.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는 툴툴 털고 물속을 걸었다.
물길과 사람 길이 교차하며 서로 왔다 갔다 사이좋게 지나간다.
헬기가 떴다.
강릉유씨묘 부근에서 구조할 모양이다.
(@덕산기에서, 푸른산님 사진)
덕산3교, 덕산2교, 덕산1교로 도로를 따라 걷는다.
계곡엔 물이 말랐고 많은 풀들이 자라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덕산1교는 덕산기 계곡의 종착지다.
어천과 합류한다.
어천을 우로 돌아 덕산기의 마지막 절벽을 따라
종착지 여탄 경로당까지 걸음을 옮긴다.
덕산기는 어천을 만나 더 큰 어천이 되고,
어천은 정선 읍내로 끼고 돌아나가는 어우라지에서 조양강과 만나 이내 동강이 되고
어라연을 향해 흘러갈테고......
"강물은 돌고 돌아서 바다로 나가는데
이내 몸은 돌고 돌아서 갈 곳이 없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덕산기에서, 푸른산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