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가을 색감 찾아서..
선운산(336m, 고창)
도솔천으로 싸목싸목 가봅시다.
인연이란 늘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사람과의 인연이 그렇듯이 공간과의 인연 또한 그런것 같다.
어디서 날아온 줄도 모르는 풀씨가 땅에 깃들듯이,
자각할 틈도 없이 누군가가 내 안에 깃들듯이,
가을색 가득한 날, 선운산에 깃들었다.
2017. 11. 11. 토요일.
선운사주차장-선운사-도솔천-투구바위-사자암-국기봉-청룡산-낙조대-천마봉-도솔암-선운사
단풍 속에 묻힌다.
선운산에는
동백숲, 장사송, 바위에 붙은 송악 등 천연기념물 세 가지,
그리고,
새벽의 계곡 운무,
선운사 경내 300년 묵은 배롱나무 네 그루,
초가을 꽃무릇 군락
낙조대의 일몰,
천마봉에서 바라보는 마애불과 내원궁,
투구바위의 협곡 암벽길
사자암에서 본 산등성이에 피어오른 바위기둥
그리고 도솔천 숲길…. 의 단풍,
그 단풍이 곱다.
작지만 다재다능한 산이다.
보통 동백이나 벚꽃으로 유명하지만
선운산 단풍은 감미롭고
그윽하고 은은하다.
선운사 일주문
도솔산 선운사라 씌어 있다.
선운산의 옛 이름 도솔산(兜率山)은
미륵불이 사는 정토를 일컫는다고 한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이후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를 말한다.
도솔천이 흐르고 극락교가 있다.
도솔계곡을 따라 극락교에 이르면 극락교 바로 앞에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다.
도솔천을 따라
붉고 노란 단풍이 물속 햇빛에 반짝이며
물 위에 파스텔화를 그려 넣는다.
선운사 입구 천왕문 앞 극락교 주변은
도솔천 계곡에 비치는 반영이 아름다운 곳 중 하나다.
많은이들이 손에 큰 카메라하나씩 얹혀있다.
선운사에서 극락교를 건너 오솔길을 따라 가면 도솔암으로 가는 길이다.
공사중인 도솔쉼터에서 인파가 몰리는 대로는 남겨두고
숲길로 들어선다.
단풍숲을 지난다.
다소 쌀쌀해진 아침 바람에 단풍 비가 내리고
도솔제 제방엔 억새가 한껏 피어오르고 있다.
철계단을 따라 산속 오솔길로 접어드니 땅이 촉촉이 젖어 있다.
낮은 기온에 응결된 습기가 운무로 내려앉은 것일께다.
이 길을 따라 첫 봉우리 투구바위로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
오르면 투구바위로 가는 길이다.
투구바위는 클라이머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자연암장이다.
두 거대한 바위가 문지기처럼 딱 버티고 서 있다.
투구바위는 자세히 보면 석회암 특유의 구멍이 벽을 뒤덮어
험상궂은 곰보상이다.
게다가 오버행으로 거칠게 치밀어올린다.
투구바위는 골짜기 양쪽을 바위벽이 바라보며 늘어서 있는 생김새다.
골짜기 위에서 보면 바위 사이의 공간이 로마 검투사의 투구처럼 생겼다.
그 앞에 사람이 서면 골바람이 불어와 서늘한 혓바닥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그로테스크한 인상의 바위 협곡 투구바위를 지나
사자암으로 가는 길은 편안하고
계곡너머 도솔암과 낙조대가 화려하다.
사자바위.
바위에 박아놓은 인공 홀드와 밧줄을 잡고 바위 위에 서면
오른쪽 아래로는 도솔암과 도솔천 내원궁,
마애불, 용문굴이 정면으로 펼쳐지고
위로는 배맨바위가 작게 보인다.
선운산 이곳 저곳을 다녀보았지만
이곳 사자암에서 보는 풍경이 무척 맘에 찬다.
편안한 오솔길따라 걷다보면 국기봉(314m).
희어재 이정표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아 쥐바위를 거쳐 청룡산으로 간다.
쥐바위를 내려서면
도솔암으로 바로 내려갈수있는 안부를 지나
특별한 구조물이나 전망이 없는 청룡산오름길이 이어진다.
314m 청룡산
인증사진 하나 부탁해 찍고는 지나간다.
배맨바위를 지나 산길을 치고 올라
병풍바위 철 계단을 내려오면 낙조대에 닿는다.
높이는 335m밖에 되지 않지만 날이 좋으면
서해 칠산바다, 곰소만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낙조대에서 오른쪽 천마봉은 금방이다.
천마봉에서는 걸어온 사자암과 반대편 선운산 기암이 아름답다.
산등성이 사이로 솟아오른 커다란 바위기둥들은
가을색을 띄운 초목들과 어우러져있다.
바위들이 스스로 기둥이 되어 계곡을 메워
수묵화로 그려놓고서,
도솔암 내원궁이 어우러져 있다.
도솔암 옆 거대한 암벽에는
15m나 되는 미륵상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 농민항쟁인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1894년.
전봉준 장군 등 동학군을 이끌던 이들은 이 마애불 앞에서 피로 맹약문을 썼다고 한다.
동학군의 비원을 간직한 마애불은 지금도 묵묵히 세상을 지켜보고 있다.
내원궁에 오르면 천마봉이 눈앞에 솟았다.
천마봉의 높이 자체는 이 암봉을 안은 선운산 자체의 높이가 그러하듯, 별반 대단치 않다.
고작 284m의 높이로 섰지만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듯한 절묘한 생김과
수치상의 높이보다 몇 곱절은 더 거대하게 느껴지게 하는
검은 바위그늘이 항상 하늘을 가리는 앉음새로,
압도적인 자태를 보인다.
활엽수 단풍 사이로 20m가 넘는 독특한 형태의 소나무 한 그루.
장사송이다.
선운사 입구의 송악, 경내 동백나무 숲과 함께
선운사를 대표하는 천연기념물이다.
수령 600년 정도의 장사송은
가지가 부챗살처럼 반듯하게 펼쳐져 있다.
옛 지명 장사현에서 장사송이란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진흥왕이 수도증진했다는 진흥굴.
최영미 시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선운사에서라는 시로 시작한다.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는 왠지 얼른 가 봐야 할 곳인 것만 같다.
꽃이 필 때면,
단풍이 익어갈 때면,
잊고 있던 선운사를 다시 떠올린다.
까마득했던 계절이 지나갈 때면
선운사 도솔천변은 느긋하게 산책하기 좋은 고즈넉한 곳이니,
싸목싸목
선운산을 그렇게 만난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