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을...주왕산 절골
주왕산 절골(청송)
새벽녘 솜털 짙은 안개에 누군들 눈물을 쏙 빼지 않으리,
단풍, 억새, 낙엽....
가을은 그 계절만큼이나 서정적 테마도 풍성하다.
그중 운치있는 풍광은 물안개를 더해주면 좋을것 같다.
가을 아침 고즈넉한 수면 위로 춤추듯 피어오르는 하얀 물안개는
몽환적이다.
하늘에 여명이 깃들고 물가에 환한 빛이 내려앉을 즈음,
새벽 물안개의 군무는 물굽이 따라 소리 없이 펼쳐지고,
뽀글뽀글 기포 위로 피어오르는
한 가닥 하얀 실마리에 넋을 뺏겨 바라보자면
어느새 물안개는 한데 모여 일렁이며
산허리를 휘돌고 넓은 수면을 뒤덮어간다.
일교차가 큰 요즘,
전국 크고 작은 호수에서는 물안개의 장관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운이 좋다면
일교차가 큰 데다 바람 한 점 없이 맑기 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물안개의 장관을 보지 못하더라도
은은한 가을 아침 절골의 정취는 충분한 보상이 되어준다.
2017. 10. 29.
주산지 & 절골.
새벽4시에 출발하였다.
도중 짙은 가을 안개도 만나고...
천천히 차를 몰아 절골에 도착하니 6시 50분,
해는 이미 떴지만
안개에 묻혀 밝지 않다.
하지만 주산지 입구는 가을 주산지를 즐기려는 객들로
가득하고......
주차장에서 주산지를 오르는 도중
안개가 걷히더니 ...... 아, 다시 피어오른다.
물속에 잠긴 왕버들로 유명한 주산지는
국내 물안개 감상의 대명사격이다.
가을이 내려앉은 주산지는 이즈음 알록달록 오색단풍이 녹아내려
형형색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황홀경을 담아낸다.
특히 이른 아침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는 날이면
신비감은 절정에 이르고
이를 렌즈에 담으려는 진사들로 발디딜틈이 없다.
가을 절경.
왕버들을 감싸며 살포시 피어오른 물안개가
신비감을 더하는 만추의 풍광을 놓치지 않으려는
인파로 새벽부터 부산하다.
조금 멀리 떨어져 눈에 차는 만큼만 담아 놓고...
절골로 간다.
절골은 주왕산으로 드는 뒷문이다.
앞문격인 대전사쪽 보다는 절골 계곡의 단풍이 더 아름답다.
절곡 계곡은 5층 건물만한 바위가 병풍처럼 좌우로 늘어서 있고,
바위 틈틈이 단풍 든 낙엽송이 한 가득이다.
폭 50m가 채 못 되는 계곡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데,
모퉁이를 돌 때마다 붉은 단풍이 고개를 내민다.
어차피 단풍놀이가 목적이니 절골탐방지원센터에서
대문다리까지만 들어갔다가 나온다.
단풍은 타이밍이 생명이라고 했다.
그 타이밍을 제법 맞춘듯 하다.
가을이 남겨져
그대로 버티고 선 산등을 타고
머뭇거리던 바람이 올라온다.....
서두를것 있나
온 산길 어울리는 동안
나 역시 이해 가을의 한자락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색을 입은 길은 계곡을 벗어나지 않고
대문다리까지 이어진다.
모두 가을색이다.
세상은 깔깔대며 울긋불긋 색깔있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새로 만들어진 섶다리를 지날때쯤 햇살이 들어오면
숲에서 내뿜는 맑은 공기와
가을가을 하는 바람이 몸을 휘감는다.
느리게 걷다가 숲속 돌모퉁에 앉으면
나무 끄트머리엔 계절을 아는 듯 연한 물감이 먼저 색칠을 하고 있다.
동글동글한 하얀 자갈과 뽀쪽하고 모난 검은돌들이 박혀 있는 곳을 지난다.
건강발마사지를 하기 위한 곳이라지만 신발을 벗는 이는 이 계절엔 없을 것 같다.
앞선 이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깊은 가을 느리게 걸으면 더 많이 보일텐데
빠른 걸음을 하는 이에게 이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싶어
뷰파인더 들여다보며 또 한참을 머문다.
잘 정비된 산길 옆으로 이름 모를 나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세상의 가을이 이렇게 깊어가고 계절의 빛을 낸다.
항상 산에 오를때면 가지는 정상에 대한 기대를 내려 놓았다.
구비구비 숲길로 이어진 정상보다는
대문다리에서
멈춘다.
멈춰선 걸음
눈에 차는 만큼,
가을을 담진 못했다는 생각이 남는 절골을 남겨두고....
돌아선다.
아침과 달리 가을빛이 들여찬 주왕산은
맑고 푸른 기운이 단단하게 뭉쳐진 것 같다,.
저 만치 올라올때 보았던 길이 새롭게 보인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갈대가 인사한다.
주왕산은 유니크한 매력이 있다.
산도 물도 이곳만이 가지고 있는 맛과 멋이 있어
시간이 다시 흐르면 어느샌가 다시 그리워지는 곳이다.
갑시데이~~
잘가라는 인사도 정겹고,
주왕산까지 나선 길, 안 먹고 돌아가면 후회한다는 닭불고기
신촌닭불백…먹으러 신촌식당.
절골을 나오며 새벽 주산지를 떠올린다.
현대인들은 주산지의 풍광을 좋아한다.
고요와 정적을 떠올려서인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초스피드의 시대니
시간에도 가속도가 붙어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세상이 빠르고
이런 사회에선 가만있으면 사람조차 낡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급해졌다.
나와 너의 거리도 좁혀졌고
지구 건너편에서 벌어진 일도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란 단어에도 등급과 차별이 생겼다. 리얼타임이라고 하는
지체를 용납하지 못한다.
1분이라도 지체된 시간은 리얼하지 않다고
그래서 실시간 응답하라고 재촉한다.
이런 초스피드 세계,
아니 스피드를 재는 것이 무의미해진 세계에서 온 사람들에게
고요와 정적은 pause 버튼과 같은 기능을 한다.
가속도가 붙은 시간 기계를 타고 날아다녔던 인간이
물에 잠긴 버드나무 앞에서 딱 멈췄다.
멎음은 세계를 다시 보게 해준다.
산행 시간을 정해 놓고 바쁘게 길을 걷다
이곳에서는 멈춰서
머문다.